<프롤로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사태는 그동안 인간 사회가 구축해 온 질서 체계와 가치 체계를 근본적으로 허물고 있다.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온 많은 제도들이 낯설어지고,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1930년대 전 세계를 뒤흔든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 못지않게 코로나-19 사태는 인간 생활 전반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혹자는 2019년부터 진행된 이 사태를 대공황에 빗대 ‘대봉쇄(大封鎖, the great lockdown)의 시대’라 부른다. 코로나-19 사태는 특히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인간의 ‘제도적 삶’을 근본적으로 되새겨 보게 만들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과 전자통신기술(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ICT)의 급속한 발전도 그러한 변화에 한 몫 보태고 있다.

  이 책을 펴낸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로, 코로나-19가 인간 생활, 특히 인간의 제도적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로, 코로나-19로 인한 변혁기에 우리나라가 어떻게 세계 일류국가로 우뚝 설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를 탐색해 보고자 한다. 특히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제도적 준비를 해야 할 것인지를 주요 부문별로 살펴볼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나라가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주고 있다. 코로나 역병이 인류사회에 끼친 영향은 세계적 금융위기를 초래한 2008년 사태 때보다 더 심각하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 『21세기 자본(Le Capital au XXIe siècle<2013>,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2014>)』으로 유명한 피케티(Thomas Piketty, 1971년~ )는 코로나 이후 세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제노포비아(xenophobia)와 같은 광기에 미래를 맡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코로나 이후를) 낙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것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며 이 위기는 우리에게 세계적으로 우뚝 설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눈부신 발전을 기록하였다. 6·25의 폐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으며,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운’ 민주화를 달성하였다. 한국의 정부와 언론들은 2019년 한국이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에 가입하게 되었다고 자랑하면서 한국이 이미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의미부여를 하였다. 30-50클럽은 인구 5천만 명 이상인 국가 가운데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긴 국가로 오늘날 미국·독일·영국·일본·프랑스·이탈리아 등 6개국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ross national income per capita)’은 2017년 처음 3만 달러(3만 300달러) 고지에 올라섰다. 한국의 2020년도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은 1천 884조 8천억 원으로, 역성장하더라도 순위는 전 세계의 12위에서 9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가 2020년 12월 1일 발표한 ‘OECD 경제 전망(OECD Economic Outlook)’은, 2020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전 세계 경제가 코로나-19로 위축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GDP 위축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 그 원인으로 풀이된다. 이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0년 경제성장률은 -1.1%로 전망된 바, 이는 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1위를 기록한 것이다. 주요 국가별로 보면 미국 -3.7%, 일본 -5.3%, 인도 -9.9% 등으로 전망되었다. 이는 G20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이 예상되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기록이다.

  한국은 또한 ‘문화 산업’까지 진출, 세계적인 ‘BTS(방탄소년단) 돌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한 이래 2010년대까지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한 사실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우리는 지난 50년간 대한민국의 국민총소득이 11,000배 늘어난 것과 지난 30년간 경제성장률 1위를 기록했다는 것, 또한 2020년 현재 메모리반도체와 스마트폰, 전기차 배터리 그리고 조선업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로이터 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전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6월로 예정된 세계 주요 7국(G7) 정상회의를 9월로 연기하고, 한국·호주·인도·러시아 등 4국을 추가로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한국 등을 ‘정식 회원국’으로 추가해 G7을 G10이나 G11로 개편할 뜻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즉흥 제안’인 데다 일본, 독일 등 기존 회원국의 반대로 이 구상은 불발되었다. 2020년 G7 정상회의는 코로나-19사태로 인해 결국 개최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은 2021년 G7 정상회의 개최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Alexander Boris de Pfeffel Johnson, 1964년~ ) 총리로부터 게스트로 초청받았다. 한국이 ‘선진국 클럽’에 2년 연속 초청되었다는 점은 우리의 위상이 그만큼 향상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이제 일찍이 세계 어느 나라도 앞서 가보지 못한 미지의 길을 앞장서 개척해야 한다. 그동안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의존해 왔던 ‘모방·추격형’ 모델에서 탈피하여, 이제 ‘창조·개척형’ 모형을 만들어가야 한다. 마침 코로나-19가 그러한 호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 기회를 활용하여 한국은 세계에서 우뚝 선 일류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코로나 사태가 가져다 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며, 그동안의 발전에 한몫했지만 구석구석 때가 낀 사회·경제·정치적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국가를 개조할 대변혁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세계 일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 여러 부분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모든 제도 개혁이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교육 개혁이 바탕에 놓여야 할 것이다. 특히 사회 각 부문의 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재벌 체제를 혁파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사회구성원 모두는 인식해야 할 것이다.

  변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개혁의 주체 세력이 있어야 한다. 말과 행동이 어긋난 채 허구한 날 ‘촛불 혁명’ 타령만 늘어놓는 진보 개혁 세력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일찌감치 기대를 접은 것 같고, 지향점을 잃고 지리멸렬한 보수 집단에 대해서는 기대감 자체가 아예 없는 것 같다. 시민단체와 언론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적폐청산(積弊淸算)의 모진 세파를 앞장서 겪어낸 사법부를 “아직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그나마 대한민국을 크게 바꾸는데 앞장설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 하는 곳”으로 생각한다. 이미 그러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정치권이나 다른 사회 집단에 기대할 수 없는 역량과 개혁적 사고를 우리의 사법부는 충분히 지니고 있다.

  2020년 3월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지에 소개된 「12명의 세계적 사상가들(12 leading global thinkers)」이나 『코로나 이후 세계(COVID-19)』라는 책을 재빠르게 펴낸 셍커(Schenker)와 같은 미래학자는 코로나 사태가 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이후 세계에서는 사회가 무너지고(social collapse), 경제시스템이 붕괴하며, 국가(state)가 이전보다 더 큰 힘을 갖게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실제로 ‘비대면 문화(untact culture)’가 확산·정착되면서, 대면 소통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기존의 사회적 관계가 붕괴하고 있다. 무관중 공연, 무관중 스포츠 경기가 이제는 낯설지 않게 되었다. 줌(zoom)을 이용한 교육 등 비대면 기술(untact technology)의 발전은 교육 현장도 바꿔 놓고 있다. 미국, 일본 등에서 이미 제도화되고 있는 원격진료(telemedicine)가 더 확산되면, 병원 풍경도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e-커머스로 상징되는 비대면 마케팅(untact marketing)은 이제 경제활동의 새로운 표준(new normal)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집중’은 ‘분산’으로 가속화될 것이 예상된다. 다니엘 벨 등이 그린 『탈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의 변화된 모습이 더 빨리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자본주의적 생산·유통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사무실에 함께 모여 일하지 않게 됨으로써 빌딩 수요가 줄고 출퇴근 교통난에도 시달리지 않게 될 것이다. 이미 일부 기업과 선진사회에서는 코로나-19 사태와 관계없이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고 있다. ‘일’의 종류와 일자리도 큰 변화를 겪을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에 관심을 갖는 학자들은 한결같이 역병의 유행이 국가의 권능을 강화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특히 월트(Stephen M. Walt), 벨퍼(Robert and Renée Belfer) 등 하버드 대학의 국제관계학 교수들은 각국 정부가 위기관리를 위해 취한 긴급조치들(emergency measures)이 부여한 새로운 권한을 위기가 종식된 뒤에까지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여러 나라 지도자들은 ‘방역’을 앞세워 정부의 권능을 강화하고 있다. 그들이 실제로 국민의 건강을 염려하는지 아니면 그것을 명분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코로나-19 사태를 정권의 유지와 창출에 이용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한다. 코로나 발병 숫자를 조작하고 숨기려 하거나, 역병의 확산 원인을 특정 집단이나 국가에 덮어씌우려 하는 것은 고전적 방법에 속한다. 전통적

미디어와 SNS를 통해 교묘한 심리공작을 펴기도 한다. 내부의 치부가 드러날 경우 ‘가짜 뉴스(fake news)’로 몰아붙여 가치판단을 흐리게 하기도 하는데, 안일하게 정치 게임에만 몰두하기에는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올 상황 변화가 너무 엄중하고 근본적이다.

  어떻든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은 코로나-19 사태를 새로운 사회 변혁의 계기로 만들기 위해 마땅한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먼저 코로나-19 이후의 사회가 순조롭게 잘 작동할 수 있도록 관련법과 제도를 미리 정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자리 나누기를 포함, 국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가치재(價値財)들이 정의롭게 분배되는 공정한 사회·경제·정치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코로나-19 사태가 초래한 주요 이슈들을 두루 다루고 있다. 목차들을 논리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신경 썼으나, 이슈 가운데는 관심이 적은 것들도 있고, 흥미로운 목차부터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꾸미다 보니 내용이 중복된 곳도 있을 것이다.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1917~63) 전 미국 대통령은 1961년의 취임 연설에서 “평등·공정·정의를 지키고, 우리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처럼 코로나 이후 대한민국은 구성원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우뚝 선 일류국가로 평등·공정·정의의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21년 정초

국망봉을 바라보며 저자 씀

 

<차례>

프롤로그

1. 코로나-19 사태는 인류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인가?

2. 랜선 라이프와 언택트 경제의 일상화

3. 빅브라더로 변한 정부의 통제와 민주적 시민성의 충돌

4. 코로나-19 이후, 대한민국은 강소국으로 우뚝 설 것인가?· 

5. 대한민국이 G7이나 G10에 포함될 가능성은?

6. 쓰레기통의 장미는 꽃을 피웠는가?

7. 한국 사회는 세습자본주의 체제로 바뀌는가?

8. 언택트 문화는 어디까지 확산할 것인가?

9. 멈춰 버린 세계 공장과 배달 경제의 활성화

10. ‘대량 생산-대량 물류’ 체제는 ‘소량 생산-온라인 배송’체제로 대체되는가?

11.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와 공정성 시비

12. 정의와 공정성의 철학적 이해

13. 정의로운 사회,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14.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사회

15. 원격 교육은 전통적 대면 교육을 전면적으로 대체할 것인가?

16. 교육의 새 플랫폼: ‘온라인 공개 수업(MOOC)’과 ‘혼합형 학습’

17. 근본적으로 재정립·재검토되어야 하는 고등교육의 목표와 기능

18. 코로나-19로 확대된 교육 격차,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19. 이공계 우대 정책의 제도화를 통한 한국 사회의 근본적 재구조화

20.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분화, ‘공생체제’는 구축될 것인가?

21. 협력이익공유제는 가능한가?

22.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기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획기적 지원 제도 마련되어야

23. 코로나-19 이후 심화한 소득격차, 어떻게 해소되어야 하나?

24. 청년일자리 창출, 어떻게 해야 하나?

25. 재벌 체제가 변화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없다.

26. 의료체계의 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27. 의료 서비스의 공공성 확대는 왜 필요한가?

28. 코로나 블루로 인한 우울증상자 치유 위한 사회정책 필요

29. 인구 감소로 인한 ‘국가 소멸’, 앉아서 보고만 있을 것인가?

30. ‘자연의 역습’에 맞서는 세계적 자연보호 선도국 지향해야

31. 한국 사회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기득권 동맹’ 깨뜨려야

32. 언론의 사회적 역할과 언론 개혁의 방향

33. 가짜 뉴스는 자율적인 진실 보도로 도태시켜야

34. 국민 대표성을 제고하는 방향의 정치 개혁 추진되어야

35. 임명직 공무원의 자율성이 확대되어야 한다.

36. 공정 사회 건설을 위해 ‘이해충돌의 회피’의 제도화가 시급하다.

37. G-zero 시대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

38. 제도 변혁은 어떻게 사회적 성과의 변화를 유도하는가?

39. 이론(theoria)보다 실천(praxis)을 중시하는 사회풍토를 조성해야

40. 사회의 근본 개혁은 사법부가 이끌어야 한다.

에필로그 

 

<저자 소개>

이종수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한국행정학회 회장 역임

저서: 인권이야기, 대한민국은 공정한가?, 새행정윤리론, 새행정학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