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인권(human right)이라는 용어는 일상적으로 듣는 흔한 말이 됐지만, 인권문제가 국제적인 관심사가 돼 그 해결을 모색하고자 하는 정치사회적 노력이 시작된 불과 수십 년 전 —UN 인권위원회와 국제앰네스티 출범 및 지구적 인권문제 NGO의 등장 시점 -부터다. 인권에 대한 짧은 역사가 말해 주듯이 인권문제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정책이 마련된 국가는 매우 적어서, 인권국가로 불릴 수 있는 나라는 극소수의 선진국 정도에 불과하다. 이처럼 현대 사회의 인권문제는 ‘유순한(tamable) 문제’가 아니라 ‘해결하고자 해도 너무 장애물이 많은 사악한(wicked) 문제’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컨대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인한 시민 학살과 민주화 운동 탄압,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여성 탄압과 주민 학살 등은 권력적·종교적 명분으로 정당화돼 극심한 인권 탄압으로 이어지고 있음에도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이렇다 할 국제적 제재 수단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권력, 경제력, 신분, 성, 나이, 외모, 신체 능력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요소에 따른 차별로 점철돼 왔으며, 최근에도 차별과 인권 침해는 ‘지구적 보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인권 보장을 위한 국제 협약이 마련된 이유는 20세기에 발생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량 학살에 대한 국제적 반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인권에 대한 국제 협약 및 전담기구가 마련됐다고 해서 개별 국가에서 자행되고 있는 각종 차별-인종 차별, 성차별, 장애인 차별 등-이 해소될 수 있는 제도적·문화적 기반이 자동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개별국가 차원에서 인권정책이 수립되고 집행되는 과정은 국제적 인권 협약 체결과는 사뭇 다른 내부적 갈등 해소 메커니즘의 진화 수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은 개별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소수자운동이다. 소수자는 ‘수적으로 열세에 있는 사람’이라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한 사회에서 권력적·경제적·문화적·신체적 열세로 인해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어떤 사회에서든 개체화·원자화된 소수자가 개별적으로 자신의 인권 보장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기는 극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소수자가 자기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소수자 혹은 옹호집단을 규합해서 조직적 기반을 만들어 강력한 소수자운동을 시도할 때에야 비로소 정치적 관심을 받게 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소수자운동은 주류 사회의 탄압과 거부 반응으로 인해 험난한 정치 투쟁의 길을 걷게 된다. 이 과정에서 혁명과 전쟁, 내란, 사회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20세기 이후 인류의 역사는 자유와 인권을 위한 진화의 길로 나아가는 진보적(progressive)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 국가 내에서 일어나는 소수자운동의 진화 속도는 그 나라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경제적 수준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일시에 진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또한 원자화돼 있는 약자들이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의식의 진화’를 성취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소수자운동을 통해 소수자 인권보장정책을 획득하게 되는 과정은 두 가지 조건-첫째, 국제적인 소수자운동을 옹호하는 제도 및 분위기가 형성될 것, 둘째, 사회 내부적인 소수자운동이 전개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 만족될 수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노동운동 같은 것은 대표적인 소수자운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반에 나타나고 있는 급격한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 국가 간 이동 증가 등으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유형의 소수자의 등장과 그에 따른 소수자의 인권운동은 가히 주목할 만한 것이라 하겠다.

  이 책에서는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삼아 주로 1990년 후반부터 현재까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소수자 인권운동의 전개 과정과 그에 따른 인권정책의 변화 과정을 소개하고자 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노동자, 결혼이주여성, 일본군 위안부, 탈북자, 성 소수자, 해외 유입 소수자의 소수자 인권운동 사례다. 이와 더불어 이 책에서는 인권운동의 기초 담론, 인권법의 논쟁점을 도입부에 제시하고, 장애인, 일본군 위안부, 성 소수자, 비정규직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한 인권운동과 정책 변동을 서술했다. 이 책은 원래 아산재단의 지원에 의해 2011년에 출판됐으나, 새로운 내용을 첨가해 2021년에 수정본으로 다시 선보이게 됐다.

  이 책은 소수자 문제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실적이 있는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이뤄졌다. 박정관 교수, 이병량 교수, 이곤수 박사, 김선희 교수, 한승주 교수, 장임숙 박사, 서성아 박사, 서혁준 박사 등이 자신의 전공 영역과 관련한 사례연구와 이론 연구를 수행해 줬다. 이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충실히 지원해 주신 윤성사 정재훈 대표님과 관계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 말씀을 드린다.

2021년 12월

대표 저자 전영평

 

<차례>

제1장 서론: 연구 의의와 개요· ··········································15

 

제2장 소수자의 인권운동과 정책·········································23

Ⅰ. 소수자 인권 담론의 등장·········································23

Ⅱ. 다문화 담론의 관점에서 본 소수자 인권·····························25

  1. 다문화 담론의 확장 필요성 / 25

  2. 다문화 담론에서 소수자와 소수자 유형의 발견 / 28

Ⅲ. 인권의 보편성·특수성 측면에서 본 소수자 인권· ······················33

Ⅳ. 소수자 인권정책 사례 연구의 분석틀· ·······························36

 

제3장 하버마스의 인권이론: 인도주의적 개입과 새로운 국제 질서·············45

Ⅰ. 들어가며·····················································45

  1. 소수자 보호를 위한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 / 45

  2. 하버마스의 기획 / 46

Ⅱ. 칸트의 기획: 국가연맹···········································48

Ⅲ. 하버마스의 기획: 칸트 기획의 비판적 재구성··························49

Ⅳ. 하버마스의 기획· ···············································51

  1. ‘국제법의 헌법화’ / 51

  2. 세계정부 없는 세계 내정 / 53

Ⅴ. 인도적 무력 개입··············································59

  1. 인도적 무력 개입(또는 간섭) / 60

  2. 이라크전쟁 비판 / 60

  3. 코소보전쟁 찬성 / 61

  4. 비판 / 62

Ⅵ. 슈미트와의 논쟁···············································63

  1. 자유주의적 패권론 / 64

  2. 국제법 현실주의 / 65

  3. 하버마스의 법제화(제도화) 모델 / 65

  4. 광역이론 / 66

Ⅶ. 군사적 개입 이외의 인도적 개입: 평등한 자원 분배· ····················67

Ⅷ. 나가며 · ····················································70

 

제4장 장애인의 인권운동과 정책··········································71

Ⅰ. 들어가며····················································72

Ⅱ. 이론적 논의와 분석틀· ··········································73

  1. 장애인 소수자집단모형 / 73

  2. 장애인 인권운동과 분석틀 / 76

Ⅲ 장애인 인권운동의 진화와 정책 변화································79

  1. 장애인 인권운동의 형성 / 79

  2. 장애인 인권운동의 성장 / 81

  3. 장애인 인권정책의 형성 / 86

Ⅳ. 나가며 · ·····················································91

 

제5장 비정규직의 인권운동과 정책·······································93

Ⅰ. 들어가며····················································93

Ⅱ. 비정규직과 그 실태·············································96

  1. 비정규직의 개념 / 96

  2. 비정규직 증가의 발생 원인 / 97

  3. 비정규직 규모 / 100

  4. 비정규직 관련 이해관계자 / 101

Ⅲ. 소수자인 비정규직 근로자········································104

  1. 소수자의 분류 / 104

  2. 소수자로서의 비정규직 근로자 / 105

Ⅳ. 비정규직과 인권···············································111

  1. 국제인권조약과 비정규직 인권 / 111

  2. 소수자인 비정규직 인권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 / 113

Ⅴ. 비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보호법· ·······························115

  1. 법·제도 구축 과정과 비정규직 보호법 / 115

  2. 비정규직 보호법 재개정 / 117

Ⅵ. 나가며: 향후 과제··············································118

 

제6장 외국인노동자의 인권운동과 정책· ··································121

Ⅰ. 들어가며: 소수자로서 외국인노동자· ·······························121

Ⅱ. 외국인노동자 문제의 근본적 속성· ·································123

  1. 비국적자 차별에 대한 정당성 인식 / 124

  2. 제한적이며 불안정한 법적 권리 / 125

  3. 배타적 순혈의식 존재 / 127

Ⅲ. 옹호연합 간 갈등을 통한 고용허가제로의 정책 변동·····················128

  1. 옹호연합모형 적용의 타당성 / 128

  2. 옹호연합의 주요 행위자 활동과 신념 체계 / 131

  3. 옹호연합의 상호작용: 듣지 못하는 자들의 대화 / 140

  4. 외부적 사건의 발생과 정책 변동: 정권 교체와 고용허가제의 도입 / 143

Ⅳ.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갈등의 전개·································144

  1. 외국인노동자의 노동권 인정 범위를 둘러싼 갈등 / 145

  2. 외국인노동자 문제에 대한 정부의 역할과 대응 / 149

Ⅴ. 나가며 · ····················································154

 

제7장 결혼이주여성의 인권운동과 정책··································157

Ⅰ. 왜 결혼이주여성인가?··········································157

  1. 결혼이주여성의 등장 / 157

  2. 결혼이주여성의 증가 / 158

Ⅱ. 결혼이주여성과 인권···········································160

  1. 결혼이주여성 인권보호 규정 / 160

  2. 소수자로서 결혼이주여성의 인권 / 162

Ⅲ. 결혼이주여성의 인권운동· ·······································163

  1. 결혼이주여성 인권문제의 발생 / 163

  2. 결혼이주여성의 인권운동 / 164

Ⅳ. 결혼이주여성정책··············································168

  1. 정책의 형성 / 168

  2. 정책의 집행 / 170

  3. 결혼이주여성정책의 특징 / 174

Ⅴ. 다문화사회를 향한 새로운 패러다임· ·······························178

 

제8장 일본군 위안부의 인권운동과 정책··································181

Ⅰ. 들어가며····················································181

  1. 연구 배경 및 목적 / 181

  2. 연구 방법 / 182

  3. 분석틀 / 183

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소수자 인권운동의 전개·····················184

  1. 인권의식 형성 / 184

  2. 집단정체성 추구 및 저항운동 / 185

  3. 이슈 확산 / 186

  4. 정부정책 획득 / 187

  5. 감시 및 피드백 / 188

Ⅲ.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소수자 인권운동과 정부정책의 주요 내용· ·····192

  1. 소수자 인권운동의 주요 내용 / 192

  2. 정부정책 / 196

Ⅳ.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소수자 인권운동과 정부정책의 적합성· ········200

  1. 소수자 인권운동의 적합성 / 200

  2. 정부정책 / 204

Ⅴ. 나가며: 정책적 시사점· ········································206

 

제9장 탈북자의 인권운동과 정책········································209

Ⅰ. 들어가며···················································209

Ⅱ. 탈북자의 정체성 변동· ··········································210

Ⅲ. 인권적 관점에서 본 탈북자의 실태·································212

Ⅳ. 탈북자 인권운동의 성격과 범주: 개량주의·후견주의적 운동··············218

Ⅴ. 탈북자운동에 대한 정부의 대응 평가: 관리주의적 대응 양식· ············223

Ⅵ. 나가며 · ····················································228

 

제10장 성 소수자의 인권운동과 정책· ···································229

Ⅰ. 들어가며···················································229

Ⅱ. 성 소수자 문제의 정책적 성격·····································231

  1. 성 소수자 문제의 정책 유형화를 위한 시도 / 231

  2. 성 소수자 문제의 성격: 인권의 문제? 정책의 문제? / 233

  3. 성 소수자 문제의 정책적 성격 / 237

Ⅲ. 성 소수자 인권운동에 대한 정책 대응: 회피와 제도화· ·················240

  1. “논쟁하고 싶지도 대응하고 싶지도 않지만, 논쟁하고 대응해야 하는 문제”의 정책 논리 / 241

  2. 성 소수자 인권운동의 성장과 정책적 대응으로서 회피 / 243

  3. 성 소수자 인권운동에 대한 정책적 대응으로서 제도화 / 250

Ⅳ. 나가며 · ···················································253

 

제11장 해외 유입 소수자의 인권운동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책· ··············255

Ⅰ. 들어가며···················································255

Ⅱ. 해외 유입 소수자의 유형과 소수자성 검토···························257

  1. 해외 유입 소수자의 종류와 소수자성 / 257

  2. 해외 유입 소수자에 대한 인권 침해 양태 / 260

Ⅲ. 해외 유입 소수자의 인권 보장 기제로서 국가인권위원회· ···············262

  1. 소수자 인권 보호의 보루로서 국가인권위원회 / 262

  2. 국가인권위원회의 이주인권 정책 / 265

Ⅳ. 나가며: 평가················································270

 

<저자 소개>

 

전영평

대구대학교 행정대학 교수, 서울대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현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박정관 

독일 마인츠 대학원 수료

고려사이버대학교 법학부 교수 역임

 

이곤수 

대구대학교 행정학 박사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원 역임

 

서혁준 

고려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울산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

 

한승주 

고려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명지대학교 교수

 

김선희 

계명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계명대학교 외래교수, 대구광역시 행복위원회 위원장 역임

 

서성아 

고려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한국행정연구원 책임연구원

 

이병량 

고려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경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장임숙 

부산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부산광역시 거점형 양성평등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