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서문>

  이 책은 일본의 행정학자 니시오 마사루(西尾勝)가 1990년에 처음 펴낸 『행정학의 기초개념』(『行政学の基礎概念』, 東京大学出版会)의 완역이다. 저자는 로야마 마사미치(蝋山政道), 쓰지 기요아키(辻清明)를 잇는 일본 행정학계의 대표적인 제3세대 행정학자이며, 이 책에 수록된 논고 대부분은 저자의 젊은 시절인 30~40대에 집필한 일본의 행정과 행정학에 관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자 성과이다.

  이 책의 지향점은 일본 행정학의 「학으로서의 자립」에 있다. 저자는 행정 「학으로서의 자립」을 「연구대상」의 독자성에서가 아니라 「연구방법」의 독자성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여타 인접 학문과는 다른 행정 독자적 현상을 식별하는데 유효한 개념장치를 재구성하고 있다. 개념의 재구성은 그 어느 것이나 행정학의 독자적 관점의 확립을 지향하면서 인접 학문과의 활발한 교류나 일본의 행정실태에 더 근접한 행정이론의 구축을 의도한 것이다. 이러한 일본 행정학의 12가지 기초개념의 집필배경이나 경위 그리고 의도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맨 마지막에 실려 있는 저자의 「후기」를 먼저 살펴보기를 바란다.

  온갖 오해와 비난을 무릅쓰고 이 책이 담고 있는 의미와 내용에 대해 역자 나름의 이해를 서술해 두고 싶다.

  첫째, 행정학의 일본화, 즉 일본 국산의 행정학을 지향하고 있다.

  현대 행정학의 발상지는 미국이다. 그렇지만, 미국 행정학이 세계 보편적인 행정학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 행정학은 미국 특유의 행정현상을 고찰 대상으로 하여 발전해 온 특수 미국산 행정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나라에서는 미국 행정학의 성과를 수용하면서 자국의 행정제도와 운영실태를 더 잘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자국산 행정이론의 구축이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이 책 속의 12가지 기초개념은 일본산 행정학 구축을 위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저자는 이 연구의 토대 위에 일본 동경대학 법학부 교수 퇴임을 몇 년 앞둔 1993년에 일본의 행정 현실에 걸맞은 일본산 행정학 교과서를 출판했다. 국제 비교의 목적은 나라 간에 나타나는 특수성과 보편성의 관찰이다. 행정학의 한국화에 노력하는 우리나라 행정학계에 얼마간 시사점이 있지는 않을까 추측해 본다.

  둘째, 행정을 파악하는 2가지 관점과 행정의 3가지 구성요소를 담고 있다.

  행정을 파악하는 2가지 관점이란 「사회관리」의 관점과 「정치·행정관계」의 관점이다. 사회관리로서의 행정은 우리 사회를 안전하고 건전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적절히 관리하는 활동을 말하며, 이에 필요한 행정의 목적, 기술, 방법 등에 대해 고찰하는 것이다. 정치·행정관계로서의 행정은 법치행정의 원리에 따라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제정한 법률이나 예산에 의해 구속되는 것을 말한다. 즉, 근대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정치와 행정, 정치가와 행정관 또는 정당과 행정조직 간의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정치·행정관계의 관점이다. 저자는 이 책 전체를 통해서 이 2가지 관점의 교착점, 즉 정치와 사회관리기술의 교착점, 민주주의와 사회관리기술의 교착점에서 행정을 파악하고 있다.

  이 2가지 관점에서 행정 또는 행정학의 3가지 구성요소가 도출된다. 첫째는 행정의 「활동」, 즉 「정책」이다. 이것은 사회관리를 위한 구체적인 활동이다. 둘째는 행정활동을 실시하는 주체인 「조직」, 즉 「관리」이다. 이것은 흔히 관료제라 불리는 행정조직의 성격, 메커니즘, 병리현상, 관리방법 등에 관한 것이다. 셋째는 행정 「조직」이나 행정 「활동」을 규정하고 있는 기본적인 틀인 「제도」, 즉 「민주주의」이다. 이것은 법치행정의 원리, 삼권분립의 문제, 중앙과 지방 간의 정부간 관계 등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은 전체를 통해 「활동」=「정책」, 「조직」=「관리」, 「제도」=「민주주의」라는 3가지 구성요소의 각각에 대해 또는 이 3가지 구성요소가 교착하는 지점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셋째, 법치행정원리와 행정실무 간의 딜레마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행정활동은 민주주의제도 아래서 법치행정의 원리에 따라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구속되어 있다. 이러한 행정에 대한 입법통제는 근대국가의 기본 원리이다. 그런데 행정활동이 양적으로 팽창하고 질적으로 고도화되는 현대국가에서는 행정활동에 관한 모든 사항을 법령으로 규정할 수도 없고,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특히 복지국가의 주요 행정활동이 행정대상의 개별적 사정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는 대인서비스임을 생각하면 행정활동에 재량의 영역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행정재량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법률에 따른 행정의 원리는 근저에서 흔들리게 된다. 이처럼 법령에 따른 행정활동의 민주적이고 획일적인 통제 요청과 개별 행정대상의 사정과 급격한 행정변화에 대응한 유연한 행정활동의 요청, 이것은 모든 행정활동에 따르는 기본적인 딜레마이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저자는 이 문제의 해결을 행정학의 과제로 삼고 있다.

  이 책은 역자 개인에게 특별히 의미 있는 책이다. 동경대학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 입학시험을 준비할 당시 처음 접한 이래, 특히 박사학위 논문을 집필할 때 늘 곁에 두고 있었다. 기존 연구의 통설을 뒤집어엎든지 아니면 기존 연구의 공백을 메우라는 불문(不文)의 박사학위논문 조건은 나의 일상을 짓눌렀다. 논문 방향을 잃어버리고 잡념이 많아지면 무작정 이 책을 펼쳐 놓고 그냥 읽었다. 나의 지향점이자 바이블이었다.

  우리나라에 꼭 소개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다. 나의 게으름을 한탄할 뿐이다. 책의 하드커버가 헤질 정도로 곁에 두고 읽었지만, 우리 말로 옮기자니 너무 어려웠다. 부질없는 핑계를 대자면 책 내용이 너무 다양하고 또 난해한 내용이었다는 점도 있지만, 특히 행간에 숨어 있는 저자 특유의 뉘앙스를 표현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여하튼 번역에 따르는 모든 오역의 책임은 전적으로 옮긴이에게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

  이 책의 번역출판 제의를 흔쾌히 수락해 준 도서출판 윤성사 정재훈 대표와 일본 동경대학출판회 관계자분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우리나라 행정학 관련 출판 사정을 고려하면 이처럼 무겁고 딱딱한 주제의 외국 학술서적을 번역출판하는 데는 실로 대단한 용기와 모험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또 정식 출판되기도 전에 대학원 수업에서 이 책과 함께해 준 영남대학교 행정학과 대학원생 여러분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흔히 외국 학술서적을 출판할 경우,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을 맨 앞에 싣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저자의 건강이 한국어판 서문 작성을 허락하지 않았다. 쓸데없이 역자의 글이 길어지는 까닭이다. 이 책의 저자인 니시오 선생으로부터 받은 학은(學恩)은 넓고 깊었다. 보답할 길이 없다. 마냥 자신의 본령을 헤아리고 살펴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도록 힘 쓸 뿐이다.

  이 역서를 니시오 마사루 선생께 바친다.

봄꽃 피우고 벌 날지 않는 4월 어느 날

옮긴이 강 광 수

 

<차례>

역자 서문 

 

제1장 행정의 개념 

1. 머리말 

2. 3가지 유형의 행정개념 

3. 행정개념의 발전

4. 정치기능과 행정기능의 교착 

5. 보론: 미국 행정학의 정치·행정개념 

6. 맺음말

 

제2장 행정과 조직 

1. 회고: 미국 행정학의 계보

2. 조직관: 폐쇄계와 개방계 

3. 조직 내 역학

4. 분쟁과 조정 

5. 전망: 조직이론 수용의 전제와 방법

 

제3장 행정과 관리 

1. 관리기술과 행정기술 

2. 관리기술의 발전

3. 정책입안과 정책평가 

4. 정책실현의 한계

5. 관리기술과 행정기술의 접합 

 

제4장 행정수요의 개념 

1. 행정수요개념의 생성 

2. 행정수요개념의 재구성 

3. 행정수요의 변환과정 

4. 정책의 평가과정

5. 맺음말: 행정수요개념의 한계 

 

제5장 정책의 작성과 형성

1. 머리말: <결정작성>과 <정책형성>

2. 사고활동으로서의 <결정작성> 

3. 사회과정으로서의 <정책형성> 

4. <정책형성>과정에서의 조정 

5. 피드백 회로의 설정 

6. 맺음말: 관리화와 정치화 

 

제6장 행정과 계획 

1. 머리말

2. 계획과 조정

3. 입법구상과 행정계획과 예산 

4. 종합계획과 지역계획 

5. 맺음말 

 

제7장 효율과 능률 

1. 머리말 

2. 능률개념의 변천 

3. 관련 제 개념의 정의와 해설 

4. 정책효과와 사업능률의 평가 

5. 맺음말 

 

제8장 행정재량 

1. 시각의 설정 

2. 행정법학에서의 재량론 

3. 행정학에서의 책임론 

4. 조직론에서의 재량론 

5. 준칙의 정립과 공개 

 

제9장 행정책임

1. 머리말

2. 관료제 조직에서의 책임 

3. 민주제와 행정책임 

4. 행정책임의 딜레마 

5. 맺음말 

 

제10장 자치 

1. 자율과 자기 통치 

2. 완전 자치와 완전 통치 

3. 주권과 자치 

4. 지방자치의 유형

5. 직접입법제와 직능대표제 

6. 다원적 정치이론 

7. 관료제와 자치 

 

제11장 정부간 관계의 개념

1. 들어가며 

2. 개념의 유래 

3. 개념의 구성 

4. 개념의 의의 

 

제12장 집권과 분권 

1. 상대비교로서의 집권·분권 

2. 전통적인 집권·분권 개념의 판정 축 

3. 집권·분권과 분리·융합: 아마가와(天川) 모델의 수용과 전개 

4. 복지국가의 정부간 관계와 상호의존모델 

 

후 기 

 

<저자 소개>

니시오 마사루(西尾 勝)

1938年 동경도 출생

1961年 동경대학 법학부 졸업

1974年 동경대학 법학부 교수

1992年 동경대학 법학부 학장

1999年 국제기독교대학 교수

2006年 공익재단법인 고토·야스다 기념 동경도시연구소 이사장

2014년 지방공공단체 정보시스템기구 이사장

일본 행정학회 이사장, 일본 정치학회 이사장, 일본 자치학회 회장, 일본학사원 회원,

지방분권추진위원회 위원, 지방분권개혁추진위원회 위원(위원장 대리),

제30차 지방제도조사회 회장, 「새로운 일본을 만드는 국민회의」 공동대표

[주요 저서]

『権力と参加――現代アメリカの都市行政』 (東京大学出版会, 1975年)

『行政学』 (放送大学教育振興会, 1988年)

『行政学の基礎概念』 (東京大学出版会, 1990年)

『行政の活動』 (放送大学教育振興会, 1992年)

『行政学』 (有斐閣, 1993年 / 新版, 2001年)

『地方分権推進委員会勧告とこれからの地方自治』 (北海道町村会, 1997年)

『未完の分権改革― ―霞が関官僚と格闘した1300日』 (岩波書店, 1999年)

『行政の活動』 (有斐閣, 2000年)

『地方分権改革』 (東京大学出版会, 2007年)

『地方分権改革の道筋 : 自由度の拡大と所掌事務の拡大』 (公人の友社, 2007年)

『自治·分権再考 地方自治を志す人たちへ』 (ぎょうせい, 2013年)

 

<역자 소개>

강 광 수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부산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석사

일본 동경대학 법학정치학연구과 석사

일본 동경대학 법학정치학연구과 박사

연구 분야: 행정학, 지방자치론

전) 일본 행정관리연구센터 연구원

전) 일본 이와테현립대학 종합정책학부 준교수

현) 영남대학교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