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현대사회에서 인권 침해가 발생했을 때 그것이 인권 침해가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인권 침해 자체를 옳은 일이라고 인정하는 이는 그 어디에도 없다(Morsink, 1999). 인권은 현대사회에서 부정의에 대한 대답으로 여겨지고, 그 적용의 폭이 과거보다 훨씬 광범위해져(Langlois, 2016)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를 망라하는 이른바 ‘절대적 담론’으로 굳어졌다. 현대사회 대부분의 사회문제 중심에 인권 관련 쟁점이 자리하고 있어(Blau & Esparza, 2016) 거의 모든 사안에 ‘인권 기반(human rights based)’이라는 수식어를 더해야 할 만큼 현대사회에서 인권을 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국제연합(United Nations: UN)이 창설되기 전까지 국제사회에서 인권과 관련된 포괄적 조약이 맺어진 적은 없었다. UN 헌장에서 인권을 명시적으로 언급함으로써 비로소 국제법, 지역과 글로벌 제도, 국가 간 외교정책 무대에서 인권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Forsythe, 2009a; Beitz, 2013). 코피 아난(Kofi Annan) 전 UN 사무총장은 2005년 4월 UN 인권이사회 연설에서 ‘인권은 UN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했다(UN, 2022c). 그리고 아난은 UN 사무총장 보고서 ‘In Larger Freedom’에서 인권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안전 없이 개발이 있을 수 없고, 개발 없이 안전도 있을 수 없으며,

인권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전과 개발 모두 있을 수 없다”(UN, 2005: 6).

 

  UN이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을 발표한 1948년 12월 10일은 미·소 냉전이 태동하는 등 철의 장막(iron curtain)이 드리워지며 글로벌 지정학적 질서가 재편되던 시기였다(나는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의 목적과 전체 내용을 고려하면 ‘보편적 인권선언’이 우리말 번역어로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세계인권선언’이라는 번역어가 자리 잡아 널리 사용되고 있어 이 책에서도 기존 방식에 따라 세계인권선언으로 지칭하겠다). 그래서 세계인권선언을 만드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본격화된 자유주의 국가들과 권위주의 국가들 사이 이념 전쟁의 대리전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세계인권선언의 탄생을 단순히 도덕적 당위로만 단순화시킬 수 없으며, 그것의 내막에 정치·경제적 요소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린 헌트(Lynn Hunt)는 『Inventing Human Rights』에서 인권의 성격을 자연성으로만 한정하는 시각을 비판하며, 인권과 정치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인권은 정치적 내용(content)을 획득할 때만 의미를 갖게 된다. 인권은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갖는 권리가 아니라, 사회에서 갖는 권리다. 인권은 신성한 권리나 동물의 권리에 반대되는 권리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권리다. 따라서 인권은 비록 ‘신성하다’고 불리더라도 세속의 정치 세계(secular political world)에서 보장받는 것이며, 인권을 지닌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Hunt, 2007: 21, 괄호 안 원문).

 

  헌트의 주장처럼 역사적으로 인권의 확대는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 저항을 통해 쟁취돼 왔다. 다시 말해, 인권의 역사는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은 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던 모든 가난하고 핍박받은 사회적 약자들의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다.

  누가 권리를 가지고, 권리의 내용을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지는 정치·경제 및 사회·문화적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권리에 대한 문제 제기는 변증법적으로 항상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앤드류 클래펌(Andrew Clapham)은 인권의 사회적 구성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권의 콘텐츠(‘content’, 즉 인권의 구체적 내용)는 더 이상 이성과 자연법에의 호소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인권 텍스트는 국내 및 국제 수준에서 협상이 이뤄지고 채택된 것이다. …… 인권의 언어와 논리는 권리 주장 및 상충되는 이익 주장 수단으로 이해돼야 한다. 인권은 닫힌 책이 아니라(즉, 완료된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대화의 일부다. …… 인권은 정태적(static)인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vibrant) 것이다”(Clapham, 2015: 161-165, 괄호 안 원문 및 저자 삽입).

 

  다시 말해, 인권혁명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그것을 어떻게 조형할 것인지는 시민들의 의지와 실천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시민들의 그러한 의지와 실천이 과거의 오류를 비판하고 수정하는 하나의 방향만 추구한다면 그것은 늘 과거 지향적 인권 실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하나의 방향이 필요하다. 그래서 UN 인권고등판무관실(Office of the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은 효과적인 인권 실현 방법으로 인권 침해 사실을 조사하고 처벌하는 반성적 방법뿐만 아니라, 인권 감수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미래 지향적 방법도 중요하다고 주장한다(Brown, 2016).

 

  나는 세계인권선언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과거와 미래 지향적 인권 실현의 희망을 구현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책은 나의 ‘인간과 사회’ 연구 시리즈 중 제2권에 해당한다. 첫 번째 주제 ‘행복(『행복과 사회』,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2018)’에 이어 두 번째 주제를 ‘인권’으로 정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권의 가치 추구가 인간이 성별, 피부색, 사회계급 등 그 어떠한 조건과 무관하게 모두 소중한 존재로서 평등하다는 당위를 사회에서 구현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에서 세계인권선언을 다룬 이유는 인권에 관해 존재하는 다양한 이견과 논란을 딛고 인류가 유사 이래 국경을 초월해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세계인권선언 정립을 시도한 최초 사례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원자료를 찾고, 원문을 꼼꼼하게 읽고 해석하며 원고를 성실히 작성하려고 노력했지만, 혹시라도 책에 오류가 있다면 모두 나의 책임이다.

 

  늘 그렇듯이 원고 작성의 마침표는 글을 적당히 쓰려고 하는 나 자신의 유혹을 이겨 내야만 찍을 수 있다. 만약, 물질적 지원이 없다면 그 과정은 더욱 고단할 수밖에 없다. 저술에 전념할 수 있도록 그러한 자원을 제공해 준 국립한밭대학교에 감사드린다.

이 책을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나의 아버지와 누나 그리고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어머니께 바친다.

2022년 6월 6일

대전현충원 옆

국립한밭대학교에서

박승민

 

<차례>

책머리에_5

제1장 서론_ 21

 1. 인권의 개념 24

 2. 근대 인권의 기초 26

 3. 인권의 다차원성 28

 4. 인권의 구분 30

 5. 전쟁과 인권 34

  1) 제1차 세계대전과 인권 / 36

  2) 제2차 세계대전과 인권 / 39

 6. 책의 구성 41

 

제2장 세계인권선언의 구성_ 43

 1. 세계인권선언 구성 과정 44

 2. 세계인권선언 주요 구성자 50

  1) 엘리너 루스벨트 / 51

  2) 장펑춘 / 52

  3) 찰스 하비브 말리크 / 54

  4) 르네 사무엘 카생 / 55

  5) 존 피터스 험프리 / 57

  6) 알렉산드르 보고몰로프 / 59

  7) 찰스 듀크 / 59

  8) 윌리엄 로이 호지슨 / 60

  9) 에르난 산타 크루즈 / 62

 

제3장 전문과 인권의 기초_ 63

 1. 전문 64

  1) 존엄성 / 65

  2) 야만성과 희망 / 66

  3) 저항권 / 67

  4) 국가 간 친선 / 68

  5) UN 체제 / 69

  6) 상호 존중 약속 / 71

  7) 공통의 이해 / 72

  8) 선언 선포 / 73

 2. 인권의 기초 74

  1) 제1조 존엄성, 자유, 평등, 형제애 / 74

  2) 제2조 차별 금지 / 78

 

제4장 기본권_ 87

 1. 제3조 생명, 자유, 안전 88

 2. 제4조 노예제도 금지 93

 3. 제5조 고문 금지 96

 4. 제6조 법인격 100

 5. 제7조 법 앞의 평등 102

 6. 제8조 법의 구제를 받을 권리 104

 7. 제9조 임의 체포/추방 금지 106

 8. 제10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108

 9. 제11조 무죄 추정 권리와 소급 적용 금지 112

 

제5장 시민권_ 117

 1. 제12조 사생활 보호 118

 2. 제13조 거주와 이주의 자유 121

 3. 제14조 망명권 123

 4. 제15조 국적권 127

 5. 제16조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권리 130

 6. 제17조 재산권 134

 

제6장 정치권_ 137

 1. 제18조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138

 2. 제19조 표현의 자유 141

 3. 제20조 집회와 결사의 자유 144

 4. 제21조 공무담임 및 선거/투표권 146

 

제7장 경제·사회권_ 151

 1. 제22조 사회보장/경제·사회·문화적 권리 153

 2. 제23조 노동권 156

 3. 제24조 여가권 161

 4. 제25조 생활수준보장권 163

 5. 제26조 교육권 167

 6. 제27조 문화권 170

 

제8장 인권의 제한_ 175

 1. 제28조 사회 및 국제 체제 176

 2. 제29조 의무와 한계 178

 3. 제30조 해석 남용 금지 183

 

제9장 세계인권선언 논쟁_ 187

 1. 긍정적 평가 188

 2. 인권의 보편성과 상대성 192

 3. 인권과 법 200

 4. 인권과 국가 206

 5. 인권과 정치 215

 

에필로그_ 220

 

| 부록 1 |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224

| 부록 2 | 세계인권선언 구성 여성 기여자 236

 

<저자 소개>

 

박승민

(現)국립한밭대학교 노마드칼리지 인문교양학부 조교수(학부장)

[ 학력 ]

•DPhil(Department of Sociology, University of Oxford, UK)

•MSc(Department of Social Policy, LSE, UK)

•문학석사/학사(고려대학교 사회학과)

[ 경력 ]

•(現) Affiliate Research Fellow (Oxford Institute of Population Ageing, University of Oxford, UK)

•(現)공공부문 Best HRD 인증위원(교육부, 한국직업능력연구원)

•(現)정책혁신 자문위원(서울시복지재단)

•(前)행정고시(2차) 출제위원(인사혁신처)

•(前)여성친화도시조성협의체 운영위원(경기도 포천시청)

•(前)차의과학대학교 조교수

•(前)한국국방연구원(KIDA)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