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대규모 참사는 엄청난 관심을 얻는다. 재난 실패는 뉴스 기사에서 명백해진다. 국회에서 실패의 책임자는 자주 호명된다. 언론과 입법 체계에서 이런 행위자들의 활동은 참사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와 토론 증가로 연결된다.

  대규모 재난이 발생하면, 정책결정자들이나 정책입안자들은 ‘뭔가 해야 한다(do something)’는 강한 욕구에 직면하게 된다. 왜냐하면 여론과 정치권에서 책임지기로 한 정부나 조직이 거의 또는 전혀 통제하지 못한 재난으로 책임 고착(blame fixing)에 대한 인과적 이야기(causal stories)가 묘사되고 부각되기 때문이다. 지배적인 정당이나 연합은 이런 책임 고착을 벗어나기 위해 신속하게 학습을 전개한다. 피해자와 그 가족, 그리고 대중은 여론과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정부의 재난관리 실패와 관련한 새로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러한 거대한 주목을 받는 것에 부담을 느낀 정부는 직접 추천한 교수, 협단체 전문가, 엔지니어, 과학자들로 구성된 전문가 공동체 등 내부 주도로 학습을 시작한다. 피해자와 그 가족, 그리고 일반인이 제외된 정책 영역(policy without a public)에서 혁신을 위한 진단과 처방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 실패가 정점으로 부각될 때 심사숙고한 토론의 결과와 학습에 기인하지 않은 문제 해결 방안이 쏟아지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여론과 대중의 관심이 시들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 보면 정책 과정의 다양한 참가자들이 자신이 학습한 교훈을 망각하게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학습 없는 흉내(miminking)와 모방(copying), 그리고 미신(superstitious) 같은 학습이 대중과 여론의 제대로 된 학습을 방해한다. 결국 정부와 지배연합(정당)은 신중한 분석 없이 대규모 참사 이후 무언가를 해야 하는 압력의 결과에 정치적인 전술을 모으려고 노력하면서 상황이 종료되기도 한다. 재난 관련 예산의 증가와 인력 및 조직의 확대, 그리고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전히 학습이 필요한) 정책이 누적된다.

  재난사건 이후 정책 변동을 연구한 학자들의 논의를 살펴보면 우리의 경우도 외국의 문제 제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이유를 집요하게 찾아내는 것, 그리고 그 결과를 일반인에게 공유하는 노력이 연구자에게 부여된 업(業, 役)이라 생각하고 있다.

  미래 안전한 대한민국을 논(論)하기 위해 산적한 과제들이 있다.

  첫째, 사소한 사건이나 사고라도 재난 원인과 관련된 교훈이나 개선점 등을 기록하고 관리하기 위한 ‘가칭 국가재난안전조사위원회’의 신설 및 상설화, 그리고 전문화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전에 발생했던 유사한 사건·사고에서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 원인 탐색과 이를 해결할 대안을 지속적으로 학습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재난안전 관련 기관들과의 제도화된 상호 작용을 수행해야 한다.

  둘째,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유사시 국가 기반 체계를 대신할 비상 체계를 과학적으로 설계하고 대비해야 한다. 지역의 경제와 재난 취약성을 고려해 재난 발생 시 핵심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이중화(duplexing)하고, 백업화(back-up)하며, 로컬화(localizing)하는 전략을 선택적으로 체계화해야 한다.

  셋째,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회단체들은 ‘재난 대비 긴급 지원 협정’을 통해 신속하게 유·무상 자원을 지원해야 한다. 「재난안전법」 제44조 등에서는 재난 대응에의 지원을 위한 규정을 두고 있지만, 피해가 발생한 지방자치단체에 긴급 물자 지원, 의료 지원, 수송 지원, 이재민 수용 임시 주거시설 제공, 긴급 복구 등을 빠르게 지원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선제적인 협약의 체결과 같은 대비가 필요하다. 만약 어느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대규모 재난 발생이 우려되거나 발생하면 가용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이 있는 인접한 여러 지방자치단체와 사회단체 등이 먼저 투자하고 지원한다. 이러한 선지출한 비용은 재난이 종료되면 결산 및 재정지원을 해 주는 방식이다.

  넷째, 안전문화 성숙도와 관련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은 안전에 대한 주체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안전의식을 위한 안전교육도 산발적이고 일회적으로 끝나면 안 된다. 전례 없는 대규모 재난 상황에 대한 사전에 준비하고 검토하고, 그리고 개선하는 것이 안전한 대한민국의 시작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재난에 편중돼 있고 안전관리에 대해서는 통일적인 규율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며, 관련 법률들이 분산돼 있다. 과거 행정안전부는 개별 안전과 관련한 부처별로 관리하는 법률들과 「재난안전법」에 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어 ‘안전관리 기본법의 제정’을 고려할 수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다만 기본법이 개별 법률보다 우선할 수 있는지가 여전히 모호하기 때문에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둘째, 재난의 예방 업무를 담당하는 재난관리책임기관과 재난 발생 시 그에 대한 대응 업무를 담당하는 재난관리주관기관이 설치돼 있어 업무의 중첩 또는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각 개별법에서 안전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별도의 기관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상당한 혼란이 우려된다.

  셋째, 「재난안전법」에서는 민관 협력을 위해 중앙 및 지역 민관협력위원회를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재난에 관한 예보·경보·통지나 응급조치 및 재난관리를 위한 재난방송이 원활히 수행될 수 있도록 중앙재난방송협의회를, 지역 차원에서 재난에 대한 예보·경보·통지나 응급조치 및 재난방송이 원활히 수행될 수 있도록 지역재난방송협의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넷째, 현장 중심의 재난 대응 체계가 우리나라의 재난안전법의 경우에는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주체와 재난의 대응을 담당하는 주체가 달라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에 지휘권의 공백이 발생할 우려 또한 존재한다.

  다섯째, 「재난안전법」에 따라 민관 협력의 증진을 위한 민관 협력 체계가 수립돼 있지만 안전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부담하고 있는 산업체의 의견을 제시하고 반영할 수 있는 제도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이 책은 독자들을 위해 ‘국회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전문가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기록하고 정리한 내용에 국정조사 결과보고서의 근거를 제시했으며, 여기에 과거대형 재난사고를 접할 때마다 기고하거나 의뢰받았던 글을 추가했다.

  관찰과 기록의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는 작업은 연구자로 사회에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여라고 생각한다.

  이태원 참사에서 제기된 (과거 사회재난에서 여전히 학습되지 않은) 교훈들, 학습을 해야 할 실천 과제, 그리고 패러다임의 전환과 디지털 재난관리체계에 대한 담론을 공유한다.

  이 책이 모쪼록 누군가의 학습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2023년 3월

동아대학교 대학원 재난관리학과 교수

긴급대응기술정책연구센터 소장

이동규

 

<차례>

제Ⅰ부 이태원 참사, 학습되지 않았거나 학습이 필요한 교훈을 논하다

 1. 세월호 참사 및 코로나 대응 이후의 교훈 도출

 2. ‘총체적 재난 대응 체계’ 대수술 필요: 범대본-중대본 ‘총괄·조정 역할’ 바로잡자

 3. 안전 패러다임 전환과 재난 학습

 4. 이태원 참사 이후, 되새겨야 할 교훈

 5. 공직문화에서 사전에 예측하는 행정이 익숙한가?

 6. 선출직 및 정무직 공무원은 재난 상황에 취약하다?

 7.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와 지방자치단체 업무 경계의 모호성

 8. 지방자치단체의 재난사태 선포 권한

 9. 대응 단계: 상황 전파의 지연과 지휘 체계 및 역할 분담의 문제점

 10. 컨트롤타워 논란: 재난 컨트롤타워는 도대체 누구인가?

 11. 중앙사고수습본부: 다중밀집사고의 경우 재난관리주관기관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의 관계

 12. (중앙 및 지역) 재난안전대책본부의 설치 및 운영: 설치 여부 판단 기준과 모바일 상황실(민간 SNS)을 활용한 가상공간에서의 협의는?

 13.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의 보충성과 연대성?

 14. (중앙 및 지역) 재난안전대책본부와 긴급구조통제단의 관계

 15. 긴급구조통제단의 역할

 16. 진상 규명 관련 문제점과 해결책

 17. 이태원 참사 이후, 재발 방지 대책을 위한 제언

 

제Ⅱ부 한국 재난관리의 실천 과제를 논하다

 1.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의 법체계상 지위 정립

 2. 20대 국회 주요 법안: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의 개선과 입법 과제

 3. 국민의 생활안전과 재정의 역할: 재난·안전 재원의 배분적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합리적 방안

 4. 통합적인 국가안전 계획을 수립할 때다

 5. 재난안전 분야에서 고려해야 하는 네 가지 개념

 6.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역할과 책임 방향

 7. 국가 재난대응 체계의 미래 방향

 8. 실질적인 피해 회복 지원 체계의 수립

 9. 인간 감염병 확산과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조직권 강화

 

제Ⅲ부 패러다임 전환과 디지털 재난관리 체계 구축을 논하다

 1. 재난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꾸자

 2. 새해에는 대규모 복합재난에 대비해야

 3. 재난관리를 위한 데이터 기반의 예측행정 시스템의 선결 조건

 4. 재난관리에서의 예측분석 적용 방향

 5. 인공지능(AI)·데이터 기반의 실시간 ‘재난안전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실현

 6. 도시 경쟁력 제고를 위한 빅데이터 활용 방안: 내부 데이터를 한 곳으로 모으고 외부 데이터와 연계 체계 구축

 7. ‘소방 빅데이터 센터’ 왜 필요한가

 

<저자 소개>

이동규

invictus88@dau.ac.kr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 행정학 박사

현) 동아대학교 대학원 재난관리학과 정교수

    동아대학교 긴급대응기술정책연구센터 소장

[국회]

현) 국회사무처 소프트웨어 과업심의위원회 위원장

    국회 입법지원 위원

전) 국회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문가 위원

    국회 안전한 대한민국 포럼 특별회원

[행정부]

현) 국무조정실 정부업무평가위원회 TF 위원(간사)

    행정안전부 정책자문위원회 재난협력분과 위원

    행정안전부 중앙안전관리민관협력위원회 위원

    행정안전부 정부혁신국민포럼 위원

    기획재정부 공기업경영평가단 위원

    서울시 서울청년센터 성과컨설팅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