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의 표제인 자치통치에 대해 저자 나름의 관점을 서술해 두고 싶다.

  일반적으로 근대국가의 특징은 고대 도시국가, 중세 봉건국가와 달리 그 영토나 인구 규모에서 대단히 큰 통일국가임과 동시에 중앙집권국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분산 할거적인 권력을 중앙에 집권한 근대국가는 부국강병, 식산흥업 등의 정책을 펴기 위해 하나의 권력, 하나의 정부, 하나의 법률 등에 기초해 전국 통일적인 정치를 행한다. 통치란 중앙집권화된 권력을 장악한 정치세력이 그 권력을 배경으로 정치공동체에 일정한 통일적인 정치 질서를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근대국가에서 국민 전체의 복지 향상이나 균등화를 위해서는 획일적인 결정이 필요하다는 사고방식에 연결된다.

  그러나 근대국가는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분립 등과 같이 하나의 정부 내부에서의 권력 배분 방식인 기능적·수평적 권력 배분만으로는 거대한 통일국가의 전 국토를 통치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전국을 공간(구역)적으로 분할하고 그곳에 정치권력을 일괄해서 배분하는 공간적·수직적 권력 배분 방법을 채용한다. 이것을 통해 탄생한 것이 근대적 개념으로서의 지방자치이다.

  자치는 일반적으로 자율과 자기 통치가 결합한 개념으로 사용되지만, 여기서 지방자치란 지역 주민이 자신의 지역에서 발생한 공공의 문제를 자신들의 힘으로 스스로 처리해 가는 것을 말한다. 특히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가능한 한 자기 책임 아래서 행정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각 지역에는 지역적 특수성·행정적 특수성이 있으며, 그것에 관한 결정은 중앙정부에 맡길 수 없다는 자기 결정권에 기초한 사고방식이다.

  이처럼 근대국가 이후의 지방자치는 소우주적 존재로서 고립적이고 폐쇄적인 자치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 전체의 통치시스템 속에서 일정한 자율성을 가진 하위 시스템으로 존재하고 있다. 자치가 없는 완전한 통치, 통치가 없는 완전한 자치는 논리적 추론의 영역이지 현실적 모습이 아니다. 따라서 지방자치는 근대국가의 중앙집권을 전제로 한 상대적 분권, 통치를 전제로 한 상대적 자치, 통치에 대한 상대적 자율성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통치와 자치의 상대성의 정도는 근대국가의 성립 과정에 나타난 역사적·정치 사회적 배경의 차이에 따라 세계 각 나라에서 다양하게 표현된다. 또한 통치와 자치의 상대적 관계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정할 것이냐의 문제는 정부체계에서의 중앙·지방 간 관계, 정부 간 관계를 만들어내며, 그것은 한 나라의 지방자치의 성격 그 자체를 규정한다.

  한편 한 나라 정부체계에서의 정부 간 관계는 중앙정부에 어느 정도 권한을 유보하고 또 이것을 어느 정도까지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할 것이냐는 집권, 분권이라는 문제로 나타난다. 이 집권·분권은 정부 간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전통적인 개념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자기 결정권의 자율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그런데 통치와 자치의 상대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집권도, 분권도라는 정도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개념에 조작적 정의를 내리고 집권도와 분권도를 측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연구자가 이에 관한 측정 지표를 개발했지만, 이러한 지표를 통해 산출된 수치에 대해 다양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 간 관계를 분석하는 또 하나의 개념은 분리, 융합이라는 개념이다. 이것은 중앙과 지방 간의 정책집행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여기서 분리란 중앙정부가 결정된 정책을 기능적 합리성에 기초해 지방자치단체와 관계없이 독자적·개별적으로 추진하려는 것이며, 융합이란 중앙정부의 다양한 정책을 지방자치단체를 매개로 해서 종합적으로 집행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분리·융합의 차이는 중앙과 지방을 포괄하는 한 나라의 통치시스템에서 행정기능과 그 구역을 분화하고 또 그것을 통합하려고 할 때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분리·융합의 개념은 상이한 역사적 경로에 따라 다양하게 형성된 근대국가의 지방자치의 특징을 분석하는 데 대단히 유용한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통치와 자치의 관점과 함께, 분리·융합의 개념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기본적인 시각을 이루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일본 지방자치에서의 구역 문제를 분석하는 데 있다.

  지방자치에 있어 구역 문제는 동양과 서양을 불문하고 대단히 고전적 문제이자 현재 진행형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 구역은 단순히 지리적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행정 권력의 공간 배치를 그 주요 내용으로 한다. 그래서 구역의 문제는 세계 각 나라에서의 보편적인 현상임과 동시에 서로 다른 국가 형성의 역사적 경로를 반영해 나라마다 매우 특수한 발현 행태를 지니고 있다.

  이 책에서의 기본적 접근법은 구역 문제가 구체적으로 발현하는 지역적 행정 공간에 편향적으로 주목해 구역 문제를 지방적 현상으로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지방을 포괄하는 일본 통치시스템의 구조 내재적 특징의 집약적 표현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 일본의 구역 문제화를 통치구조의 문제에서 구역 문제또는 구역 문제에서 통치구조의 문제로서 분석한다.

  

  이 책을 출판하기까지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도서출판 윤성사 정재훈 대표의 결단이 없었다면 이 책의 출판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척박한 우리나라 사회과학 출판시장에서 이윤과는 전혀 무관한 학술 연구서를 출판하는 데는 실로 대단한 결단이 필요했으리라 짐작한다. 난망지은(難忘之恩)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흔쾌히 출판을 승낙해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223월 스승 니시오 마사루(西尾勝)가 이승을 떠났다.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으로 조문하지 못했다. 그의 부재를 실감할 수 없었다. 1월 그와 함께한 시간과 공간에 머물며 나만의 추모 의식을 가졌다. 여전히 상실감이 너무나 크고 깊었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 허겁지겁 바삐 달려왔지만, 그만 방향을 잃고 제자리 걸음으로 어지러운 발자국만 남기고 있다. 이 책의 출판으로 이제 그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스승 니시오 마사루에게 바친다.

 

꽃 피고 져도 아직 봄 오지 않은 4월 마지막 날에

강광수 씀

 

<차례>

서장 일본 지방자치에서 구역 문제

 1. 환경·기능·구역 

 2. 전후 지방제도개혁의 유산: 구역과 기능의 조정 문제 

 3. 통치구조의 문제로서 구역 문제 

 4. 책의 구성 


제1장 구역 문제를 둘러싼 기존 연구의 검토

제1절 「적정」 규모론 

 1. 구역과 적정 규모 

 2. 구역의 적정 규모에 대한 접근법 

 3. 「적정」 규모론의 한계 

제2절 사무재배분론과 구역 

 1. 사무재배분론과 구역 문제의 상관성 

 2. 사무재배분론과 구역 문제의 관계를 둘러싼 주요 논의 

 3. 사무재배분론에서의 구역 문제의 특징과 그 한계 

제3절 광역행정론과 구역 

 1. 행정의 광역화와 구역 문제 

 2. 광역행정의 공간 범위와 그 주체의 문제 

 3. 광역행정체제의 제도화·조직화의 범위 

 4. 광역행정수요와 광역행정체제의 상관성과 그 한계 

제4절 기존 연구의 함의: 지방종합행정체제 

 1. 환경·지방제도·지방종합행정체제 

 2. 지방종합행정체제, 구역의 문제화, 조정의 제도화·조직화 


제2장 일본 구역 문제에의 접근: 섹셔널리즘·종합행정체제·조정

제1절 통치구조의 집약적 표현으로서 구역 문제 

제2절 섹셔널리즘과 지방종합행정체제 

 1.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적 양태로서 종합행정체제 

 2. 섹셔널리즘과 종합조정론 

 3. 「섹셔널리즘–지방종합행정체제」 

제3절 「섹셔널리즘-지방종합행정체제」와 정부 간 관계론 

 1. 일본 정부 간 관계론의 의미와 그 「관계 구조」의 특징 

 2. 정부 간 관계론의 다양한 접근법과 그 특징적 경향 

 3. 정부 간 관계론과 구역 문제에의 편향 


제3장 일본 「섹셔널리즘-지방종합행정체제」의 형성과 구조

제1절 내각제도에서 할거구조의 형성 

 1. 새로운 통치기구의 탄생과 연합정권 내재적 할거구조 

 2. 태정관 제도의 전개와 그 「이중 구조」화 

 3. 「내각제도」 원형의 성립과 할거적 다원 구조의 제도화 

제2절 지방종합행정체제의 형성: 「내무성-부현 체제」·「지방제도」 

 1. 「내무성-부현 체제」 

 2. 「지방제도」 

제3절 「내무성-부현 체제」·「지방제도」·「지방종합행정체제」 

 1. 전전의 「섹셔널리즘-지방종합행정체제」의 의미 

 2. 행정의 전문 분화와 내무성 위상의 상대적 저하 

 3. 전전의 「섹셔널리즘-지방종합행정체제」의 전개 


제4장 「섹셔널리즘-지방종합행정체제」의 단절과 연속

제1절 전후 개혁에 따른 「섹셔널리즘-지방종합행정체제」의 구조 변용 

 1. 「내각제도」의 변용과 계승 

 2. 「내무성-부현 체제」, 「지방제도」의 구조 변용 

 3. 전후 개혁에 의한 통치구조 변화의 함의 

제2절 행정 집행의 「융합화」(融合化): 기관위임사무 체제 

 1. 기관위임사무의 의미 내용 

 2. 기관위임사무제도의 전전·전후 연속의 과정 

 3. 전후 기관위임사무의 제도화 과정과 그 구조 변용의 의미 

 4. 2000년 지방분권 개혁에 따른 기관위임사무제도의 폐지와 그 함의 

제3절 행정 주체의 「동정화」(同定化): 국민건강보험제도 

 1. 사회보험·행정 주체·지방종합행정체제 

 2. 국민건강보험제도 형성의 전사(前史) 

 3. 전전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성립: 임의제(任意制)에 의한 조합주의 

 4. 전후 국민건강보험제도의 형성: 기초자치단체 공영제와 지방종합행정체제 

제4절 행정구역의 「합치화」(合致化): 교육위원회 제도 

 1. 교육자치·행정구역·지방종합행정 

 2. 메이지 초기의 지방교육행정체제: 문부성의 탄생과 학구(學區)제 

 3. 전전 지방교육행정체제의 창출: 「학구제」의 일반지방행정구역으로의 편입 

 4. 전후 지방교육행정체제의 형성: 「학구제」 구상의 좌절과 교육위원회 제도의 형성 

제5절 지방종합행정체제의 재정적 보장: 지방교부세제도의 형성 

 1. 지방종합행정체제와 지방재정조정제도 

 2. 전전 지방재정조정제도의 형성: 1940년 체제 

 3. 전후 개혁과 지방교부세제도의 형성 

 

제5장 조정의 제도화·조직화와 그 한계

제1절 구역 문제화의 「구조」·「함의」·「조정의 한계」 

 1. 「섹셔널리즘-지방종합행정체제」의 한계 

 2. 조정의 제도화·조직화로서의 구역 문제와 그 함의 

 3. 조정의 제도화·조직화의 한계 

제2절 조정의 제 형태 

 1. 전전의 「기획원」(企劃院), 「내각 인사부」(內閣人事部) 설치 구상 

 2. 전후의 「내정성」(內政省) 설치 구상 

 3. 새로운 광역적 지방행정구역의 창설 구상: 도주(道州)제·「지방」 안 

 

제6장 본 연구의 의의와 남겨진 과제 

 

<저자 소개>


강광수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부산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석사

일본 동경대학 법학정치학연구과 석사

일본 동경대학 법학정치학연구과 박사

연구 분야: 행정학, 지방자치론

전) 일본 행정관리연구센터 연구원

전) 일본 이와테현립대학 종합정책학부 준교수

현) 영남대학교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