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국제정치를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국가 간의 사건을 나열하거나 외교 현상을 관찰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며, 동시에 우리가 딛고 선 땅의 운명을 묻는 일이기도 하다. 국제정치는 질서와 균형, 충돌과 타협이라는 힘과 협력의 논리로 움직인다. 언뜻 개인의 삶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언제나 우리 곁에 가장 가까운 현실로 존재해 왔다.

  특히 한반도라는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곧 국제정치의 논리 속에 살아간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강대국의 이해가 교차하는 지정학적 조건, 분단과 냉전의 역사, 동아시아의 변화와 불안정은 늘 우리의 삶을 규정해 왔다. 따라서 국제정치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조건을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고단했고, 그 무게 앞에서 망설임도 많았다. 그러나 한국의 국제정치 환경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불안정해지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교과서보다 좀 더 쉽게, 그러나 이론과 역사, 그리고 현재의 국제정치적 맥락이 함께 호흡하는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이 이 책의 출발점이었다. 책을 마무리하는 지금, 그 다짐에 어느 정도 닿았는지 여전히 부족함이 크다.

  무엇보다도 집필 과정에서 가장 고민이 되었던 것은 ‘국제정치’와 ‘국제관계’라는 용어의 혼용이었다. 학문적으로 국제정치는 외교·안보 중심의 정치적 관계를 지칭하는 반면, 국제관계는 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차원의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좀 더 넓은 분석 틀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두 개념이 엄격히 구분되기보다는 교차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학계조차 명확히 정리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 두 용어를 엄밀히 구분하지 못하고 혼용했음을 고백한다. 이는 개념의 혼란이라기보다는, 국제정치라는 언어를 통해 좀 더 포괄적인 국제관계의 흐름을 설명하고자 했던 선택이었다. 독자들께서도 이 점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책의 앞부분은 국제관계의 기초 개념과 이론들을 다루고 있다. 국가, 주권, 무정부성, 국가이익, 힘과 같은 기본 개념들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려 했으며, 현실주의·자유주의·구성주의 등 주요 이론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쉽게 전달하려 했다. 국제관계사의 전개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오늘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적 구조로 해석했으며 외교정책, 국제기구, 전쟁과 평화, 국제정치경제 역시 한국과 한반도의 사례와 연결하여 설명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동아시아 국제정치와 한반도의 현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제국주의와 서세동점의 충격 속에서 한국·중국·일본이 선택한 길,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변화, 중국과 일본의 지역 구상, 미·중 전략 경쟁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긴장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남북한 관계, 북핵 문제, 한·미동맹의 전개 과정 역시 이 같은 구조 속에서 재해석했다.

  국제정치는 배경이 아니라 우리 삶의 조건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국제정치를 체감하지 못하고 국내 정치에만 몰두한다. 이 책은 그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하는 시도다. 독자가 스스로 사고하고 해석할 수 있는 틀을 갖추는 데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책은 원래 강의 노트를 정리한 데서 출발했다. 따라서 각주와 참고문헌의 충실함이나 학술적 엄밀성 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다. 강의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기 위해 쓴 자료를 바탕으로 한 만큼, 개념과 이론, 역사적 사실을 간명하게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었지, 모든 학술적 논쟁을 세세하게 검토하거나 문헌을 빠짐없이 정리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이 점에서 학문적 연구서라기보다는 입문적 교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국제정치와 국제관계라는 방대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오래된 지식을 그대로 옮겨오거나, 새로운 연구성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저자의 해석이 편향되었거나 사실과 어긋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모두 저자의 한계이자 책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을 결심한 이유는, 국제정치와 한국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틀을 더 많은 독자와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불완전하더라도 일단 세상에 내놓고, 이후 더 나은 수정과 보완으로 이어가는 것이 학문을 하는 한 사람의 의무라 생각했다. 독자 여러분이 책을 읽으면서 발견하게 될 오류와 미비점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더 나아가 날카로운 비판과 제언을 보내 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수확이 될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을 쓰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언제나 변함없는 믿음과 격려로 뒷받침해 주신 부모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그분들의 가르침과 성실한 삶의 본보기가 오늘의 나를 지탱해 주었다.

  또한 곁에서 늘 따뜻한 이해와 기다림으로 함께해 준 아내 혜원과 아들 세용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전한다. 그들의 배려와 응원이 있었기에 이 책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출간을 빌어, 사랑하는 가족에게 다시 한 번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나의 연구실에서

조윤영

 

<차례>

제1장 국제관계란 무엇인가? 

제1절 국제관계라는 관심 영역으로 들어가기: 왜 우리는 국제관계연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제2절 국제관계와 국가 

제3절 국가 체제 변화의 역사 

제4절 국제관계와 국가이익

제5절 국제관계와 무정부 상태

제6절 국제 체제와 국제사회 

제7절 국제관계와 주권 

제8절 국제관계와 힘

 

제2장 국제관계의 역사와 이론 

제1절 국제관계의 역사적 진화

제2절 국제관계 이론: 의미와 필요성

제3절 현실주의: 힘을 통한 평화 

제4절 자유주의: 협력과 평화의 가능성

제5절 마르크스주의: 불평등의 세계 

제6절 구성주의: 규범과 정체성

제7절 국제사회론 

 

제3장 외교와 외교정책 

제1절 국제관계와 외교

제2절 외교정책이란 무엇인가?

제3절 외교정책 결정요인과 분석 수준

제4절 외교정책 이론

 

제4장 국제관계와 안보 

제1절 국제관계와 전쟁

제2절 국제관계와 평화

제3절 국가안보와 신흥안보

 

제5장 국제기구와 국제정치경제 

제1절 국제관계와 국제기구

제2절 국제관계와 글로벌 거버넌스

제3절 국제관계와 유엔

제4절 국제정치경제란 무엇인가?

제5절 국제무역질서

제6절 국제통화질서

 

제6장 동아시아와 국제관계 

제1절 20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붕괴와 형성

제2절 동아시아 지역의 부상과 특수성 

제3절 미국과 동아시아: 일본 개항부터 한국전쟁 

제4절 냉전기 미국과 동아시아 국제관계 

제5절 탈냉전 1기 미국과 동아시아 국제관계 

제6절 탈냉전 2기 미국과 동아시아 국제관계 

제7절 일본의 보통국가화와 방위정책의 변화

제8절 중국의 부상과 초강대국 전략

제9절 미·중 관계의 역사적 발전과 전략 경쟁

 

제7장 한반도와 국제관계 

제1절 남북한 관계의 형성과 역사적 변화

제2절 한·미동맹의 형성과 역사적 변화

제3절 한·일 관계의 역사적 발전과 갈등의 극복을 통한 협력 

제4절 한·중 관계의 역사적 전개: 대결에서 협력으로 

제5절 북한 핵 개발의 역사와 특징

제6절 새로운 남북 관계의 모색: 안보와 평화의 균형 프로세스를 향하여

 

<저자 소개>

조윤영

미국 아메리칸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AU, SIS) 국제정치학 박사

現)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前) 스웨덴 국제평화연구소(SIPRI) 방문학자, 외교부/통일부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