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라는 이름을 듣거나 가본 사람은 많지만 직접 예일대에서 공부를 했거나 직장으로 다녔던 사람은 흔치 않다. 이 책은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이른바 엘리트 사립대학을 자세히 모르는 학생 또는 일반인을 위하여 편안히 소개하겠다는 의도로 시작하였으며, 구체적으로 이 초명문대학의 빛과 그늘을 함께 조감해 보려 한다. 예일이 왜 예일인지, 어떤 과정으로 오늘의 예일대가 되었는지, 또한 엘리트 대학의 규범적 가치와 현실적 한계에 대해서도 얘기할 것이다.

  누구나 최고의 학교에서 가장 좋은 배움을 갖고자 한다. 대철학자 같은 교수, 미래의 대정치가, 최고의 법률가 등 그런 사람을 사귀고 배우면 얼마나 좋겠는가? 서구 전체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의 대학교육 전반에 걸쳐 특히 인문교양 및 사회과학 영역에서 예일대만큼 앞서서 내용상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미친 학교는 많지 않다. 이 책에서도 일면 고대 그리스에 기원을 둔 인문교양 교육이 근현대 대학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예일대는 가히 입이 쩍 벌어지는 교육 품질, 연구성과, 멋진 시설, 선택받은 천재들의 공동체로 유명하다. 캠퍼스를 벗어나 맨하탄과 세계무대에서 뛰는 예일 사람들은 홀연 현대 자본주의의 선봉이 되기도 한다.

  현대 미국과 서구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소수 엘리트 대학 및 그 졸업생들에 대한 평가가 모두 호의적이지는 않다. 2019년 예일 로스쿨의 말코비츠 교수가 쓴 <능력주의 함정>The Meritocracy Trap에도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듯이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포장된 능력주의가 실제로는 거의 대물림되는 것으로, 이 때문에 초상류층과 중산층의 사회경제적 격차는 극심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초상류층 스스로 불행해진다고도 한다. 예일의 폐쇄형 공간은 크루즈 선처럼 안락한 세습의 배양접시일 수 있다. 훨씬 심한 격차의 시작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어떤 삶, 어느 대학이 돈의 영향권 밖에 있으랴마는, 화려한 브랜드에 가려진 또는 덜 알려진 ‘자본의 그늘’을 아마도 예일 캠퍼스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예일은 아무나 들어가는 학교가 아니며 재학 중에도 학부생이든 대학원생이든 유별난 노력과 경험을 하게 된다. 금전적 혜택과 교육 인프라의 지원도 물론 대단하지만, 뉴헤이븐 캠퍼스를 일상으로 누비는 사람들의 긍지와 고뇌도 이해해 주는 것이 공평할 것이다. 실제로 만났던 예일 구성원 상당수는 학문과 인격에다 열정까지 갖춘 경우가 많았다. 그들을 부러워하며 감사하는 마음도 물론 당연하다.

  필자는 2017~18년 귀한 기회를 얻어 예일대학교에서 풀브라이트 방문교수Fulbright Visiting Fellow 자격으로 연구와 강의에 참여하면서 현지의 많은 교수/학생/직원들과 네트워킹하는 복을 누렸다. 실은 그 이전부터 개인적 인연으로 이 학교를 직간접으로 관찰했는데, 그냥 두기 아쉬운 기록을 바탕으로 미국 명문대의 교육 시스템, 학사제도/정책, 교수/학생들이 겪는 보람과 고뇌도 함께 엮었다. 특히 1년의 연구년 기간 중 몸소 캠퍼스의 연구실, 강의실 등에서 만나고 경험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예일대를 안에서 관찰하되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볼 위치에 있었던 것은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2009~10년에 1년 반(3개 학기)을 매사추세츠주립대University of Massachusetts Amherst에서 정규 학부강의를 맡기도 했는데, 이런 경험 또한 이 책에 일부 풀어놓았다.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왕이면 귀국 후 1년 이내에 이 책의 집필을 끝냈으면 좋았겠지만. 어쩌다보니 훨씬 늦춰지게 되었다. 이 책의 초고를 읽어 준 뉴욕과 시애틀의 예일대 식구들에게 특별히 감사드린다. 의도치 않은 실수나 덜 업데이트 된 부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필자 잘못이니 양해 바란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예일대 같은 초명문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가를 한 방에 알려주지는 않는다. 즉, 미국의 명문대 진학에 관심 있는 고교생, 대학생, 대학원생들만을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입학 과정, 입학 준비에 필요한 사항, 특히 SAT/GRE/LSAT/GMAT 등 각종 시험 및 입학 절차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으나,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런 내용이라면 요즘 학생들이 인터넷이나 개인 인맥 등으로 더 자세히 알아낸다. 또한, 대학정책의 관점에서 의미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특정 대학의 거버넌스, 학사 제도/정책 등을 건조하게 소개하는 것도 필자 개인으로는 가장 자신있는 부분이지만 가급적 줄일 것이다. 다만, 역사적 맥락과 교육적 요소를 바탕으로 하되, 미국의 대학이 움직이는 방향을 부분적으로나마 짚어내고 싶다.

  이 책이 귀족 대학과 ‘그들만의 리그’를 광고하는 의도로 비칠까 조심스럽다. 그 반대쪽 얘기도 많다. 넓게 드리워진 예일의 그늘, 차별, 폐쇄성 및 ‘능력주의의 덫’ 이슈도 접하게 될 것이다. 특히 약 300억 달러 규모의 엄청난 적립금 등 이 땅의 대학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교육/연구 투자가 이루어지는 현실에 상당한 위화감이 생길 수 있어서 이 또한 필자/독자가 함께 제어했으면 한다. 서구식 대학평가가 남용되는 현실에서 그 위험성과 약점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실제 다양한 분야/전공에서 하버드나 예일의 랭킹이 뒤처지는 경우가 많으며, 이미 최고는 다른 학교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초고를 한참 쓰고 있던 2020년 3~4월은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던 시기였다. 필자는 가장 큰 희생을 치렀던 대구·경북에 있었다. 전쟁터 최일선의 참호 속에 웅크려 글을 쓰는 형편이었는데, 출근하지 않고 집에 머무르는 것이 생존과 애국의 길이었던 때였다. 매일 확진자가 수백 명씩 나오는 절박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버텨준 의료진, 공무원, 언론인 등 뭐라 감사할지 모를 수많은 분들이 있었다. 봄학기 전체를 동영상과 Zoom 실시간 강의로 진행하던 4월 초, 대구의 신규 확진자가 ‘0’으로 바뀌는 감동을 겪었다. 원고를 읽고 좋은 의견을 주신 경북대 김성준/최희경 교수께 감사를 드리고, 윤성사의 열정과 편집 능력에도 경의를 표한다.

  10월 현재에도 미국과 바깥세상에서 팬데믹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2020년 예일대 역시 봄학기에 이어 가을학기도 전면 온라인으로 진행하면서 일부 학생들만 캠퍼스에 받아들이는 정도이다. 이미 세계가 영원히 바뀌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책 역시 새롭게 평가해야 하겠다. 우선 부담 없이 ‘코로나19 이전’ 예일의 춘하추동을 편안히 즐겨 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쁠 것이다.

2020년 10월

경북대학교 복현 캠퍼스에서

필자 씀

 

<목차>

제1장 예일대 미리보기 

1.1. 예일대 가는 길

1.1.1. 4개 장면 

1.1.2. 예일대 캠퍼스 살펴보기

1.1.3. 예일대 학부의 학사 운영

1.1.4. 풀브라이트

1.1.5. 기숙대학 

1.2. 예일대 사람들

1.2.1. 예일대 사람이 되는 길

1.2.2. 예일의 현직 교수들 

1.2.3. 예일대의 학생조직, 학생회

1.2.4. 대학원생 노조

 

제2장 예일, 사계 

2.1. 봄: 예일 4계의 시작 

2.1.1. 봄학기의 시작, 눈 덮인 캠퍼스

2.1.2. 예일대 2018년 봄학기 수업

2.1.3. 예일 공개강좌 주간 

2.1.4. 예일대 졸업 행사 

2.1.5. 학비 부담, 가족의 기여 

부록: 토머스 프리드먼과 젭 부시

2.2. 여름: 오랜 빛, 새로운 지성

2.2.1. 1701년 “신, 조국, 예일을 위해”

2.2.2. 대학신문의 가치: 예일대 신문 

2.2.3. 예일대 도서관

2.2.4. 금강산도 식후경, 예일에서 밥 먹기

2.2.5. 예일대 로스쿨 

부록: 경북대 학생들의 예일 여름학기

2.3. 가을: 역동하는 예일 

2.3.1. 예일 기후 컨퍼런스 

2.3.2. 힉슨 강의 시리즈, 텍사스 강연 

2.3.3. 예일과 스포츠 

2.3.4. 미식축구, 대학풋볼

2.3.5. 예일의 양성평등: 여학생 입학

부록: 뉴잉글랜드의 대학 캠퍼스 투어

2.4. 겨울: 예일의 그늘과 도전 

2.4.1.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예일을 점령하라.

2.4.2. 예일의 월스트리트 티켓?: 경영대학원 

2.4.3. ‘술 취한’ 예일? 

2.4.4. 예일대 <해골단> 

2.4.5. 예일의 폐쇄적 진보성, ‘그들만의 리그’ 

부록: 예일대 학생의 정신건강 문제

2.4.6. 예일의 빛과 어둠

 

제3장 예일을 넘어 

3.1. 미국 대학의 다양한 모습

3.1.1. 미국의 좋은 대학과 입시

3.1.2. 대학과 표현의 자유

3.1.3. 매사추세츠 주립대와 5개 대학 연합체

3.1.4. 미국 대학의 과세 논쟁

3.1.5. ‘관료제 때리기’ , 예일과 매사추세츠 주립대의 대학 행정 

3.2. 경계를 넘어서

3.2.1. 코네티컷 이야기

3.2.2. 새로운 도피처, 뉴헤이븐

3.2.3. 인종차별, 미국과 예일의 오랜 도전 

3.2.4. 미국의 주류 신문: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제4장 에필로그 

 

<저자 소개>

이시철

경북대와 서울대에서 행정학을 공부했고 워싱턴대(Univ. of Washington)에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대전광역시 교통국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나 대학으로 옮긴 후 한국지방자치학회보 편집위원장, 한국정부학회 회장, 경북대 기획처장/교무처장, 행정안전부 정책자문위원,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경북대학교 부총장/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9~10년 매사추세츠 주립대학교(Univ. of Massachusetts Amherst)에서 3학기를 강의했고, 2017~18년 풀브라이트 방문교수로서 예일대학교(Yale Univ.)에서 1년간 연구와 강의를 경험하며 많은 사람과 교류했다. 저역서로 , <그린 어바니즘> 등이 있으며, 사람-건강-녹색-도시의 연결성 연구의 관심을 둔다. 최근 논문으로 “밀도와 안전의 공존 가능성; 코로나19 시대, 공간계획의 변화방향 예측”, “코로나19, 대구의 초기 대응에 관한 주요 쟁점 분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