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2009년 밤하늘의 혜성처럼 나타난 비트코인은 그동안 잘 다져진 금융생태계와 충돌하며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다가 누군가가 상상할 수 없는 수익을 얻었다거나, 기존 화폐를 대체하고 거래비용과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전통 금융 시스템을 대체할 혁신적 수단이라는 말에 세상의 이목을 끌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내 실질가치가 없는 데이터 조각, 가격의 불안정성과 충동적 거래, 해킹의 표적과 보안취약성 등 부정적 시각에 묻혀 버렸다. 각 나라는 디지털자산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기 시작하였고, 중국 등 몇몇 나라는 원천적으로 금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싱가포르 등 선진 국가들과 국제기구는 완전 금지하는 게 아니라 부작용은 규제하면서도 잠재적인 혁신 요소를 질식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무엇이 디지털자산의 혁신 요소이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어떻게 규제를 하는 것이 옳은가? 이 물음들이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필자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새로운 기술의 출현은 현재의 규제와 언제나 긴장 관계였다. 증기기관을 발명하였을 때도, 마차를 대체하는 자동차가 나타났을 때도 인터넷이 출현하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발명품에 대하여 부작용이 부각되고 생소한 것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지배하면서 생존에 대하여 회의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기술과 시장은 규제와 조정과 타협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왔고, 어떤 기술은 과거의 것을 완전히 대체하기도 하였다.
디지털자산도 기술과 규제의 긴장하에서 지속적인 혁신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좋은 규제를 마련하여야 한다. 그런데 복잡한 의사결정 절차와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존재하는 민주적 사회에서 좋은 규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규제 당국이나 정치인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개발자, 사업자뿐 아니라 디지털자산 이용자 등이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자산 시장, 디지털자산 규제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과 정확한 이해가 높아져야 한다. 그러나 시중에는 디지털자산 기술, 시장, 규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전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서적들이 부족하다. 디지털자산의 낙관적인 투자를 권유하거나 기술이나 법령 중 한쪽만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어 공학도가 많은 디지털자산 개발자, 사업자들은 규제의 형성이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고, 법령을 다루는 사회과학도들은 기술의 이해가 쉽지 않다는 토로를 많이 들었다. 또한 이용자 등 일반인은 쉽게 접할 수 있는 투자서에 치중하는 경향도 보였다. 그러는 가운데 매스컴이나 SNS를 통하여 나오는 단편적인 정보로 부정적인 인식이 굳어지고, 기술적 이해는 비트코인에 머무르고 시장은 디지털자산 거래에만 국한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에 따라 디지털자산 관련 이용자, 사업자, 규제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을 펴내고자 하였다. 지난해 말 공직을 그만두면서 그동안의 규제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과 토론, 현장에서 뛰고 있는 블록체인 기업들과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부족한 지식과 정보를 보완하여 디지털자산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돕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을 만들려고 하였다.
이 책은 총 7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크게는 블록체인 기술, 디지털자산 시장, 규제, 혁신 등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기술, 시장, 규제, 혁신에 대한 독자들의 전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하여 기술과 규제의 관계, 규제의 형성과 애로, 규제의 방향 등을 담았다. 2장은 디지털자산에 대한 이해의 첫단계인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설명이다. 핵심 기술과 과제, 블록체인 기술의 적용 사례들로 구성되어 있다. 3장은 시장에 관한 사항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구현한 디지털자산이 어떻게 진화되고 다양화하는지, 시장이 어떻게 확산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자산의 거래뿐만 아니라 지급 결제 기능, 분산 금융(DeFi) 등 다양한 혁신적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장의 확산 상황을 담아 디지털자산 시장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하였다. 4장, 5장, 6장은 규제에 관한 내용이다. 4장은 디지털자산과 현행 규제가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지 알아본다. 디지털자산의 법적 성격, 자금 세탁, 해킹 등 부작용과 이용자 보호, 통화금융 시스템을 통하여 가능성을 살펴본다. 단순히 디지털자산에 대한 장점만 알리는 게 아니라 부작용도 구체적으로 기술함으로써 독자들의 균형 있는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5장은 기술과 규제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세계 각국이 규제와 혁신을 조화시키기 위하여 어떤 노력과 고민을 하는지 알아보았다. 6장은 우리나라의 디지털자산 규제에 대한 내용이다. 7장은 혁신에 관한 필자의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다. 그간 규제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좋은 규제를 위한 방향들을 적었다.
이 책을 쓰면서 디지털자산과 관련된 개발자, 사업자, 전문가, 규제 당국이 얼마나 고심하고 노력하고 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부족한 부분은 그들의 고민과 지식을 모두 담지 못한 필자에게 있다. 아무쪼록 이 책이 블록체인 기술과 시장, 규제에 대한 우리 경제사회의 이해도를 높이고 좋은 규제로 나아가는 입문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역사적으로 신기술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였던 개인과 국가가 새로운 부와 성장을 이루어 왔던 것을 보아 왔다. 앞으로 전개될 2단계 디지털자산법 논의, 블록체인 산업정책 추진 과정에서 규제 형성에 참여하는 모든 행위자가 협력하여 좋은 규제를 만들 때 디지털자산 이용자, 사업자들에게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금융경제 시스템의 혁신과 국가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조언과 지원을 해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은사이신 이은국 연세대 명예교수님, 노준형 전 정보통신부 장관님,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권헌영 원장님, 구주영 박사님, 윤성사 정재훈 대표, 이분들이 아니었으면 이 책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과기정통부, 금융위, 국무조정실,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핀테크지원센터, 한국핀테크산업협회, KODA, 인피닛블록 등 디지털자산업계의 많은 분이 도움을 주셨다. IBK서비스 정광후 대표님, 정종욱 과장과 직원 여러분의 지원에도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묵묵히 옆에서 응원해 준 아내 박소연과 혜연이, 준원이에게도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2024년 9월
이 효 진
<차례>
01 기술, 시장, 규제, 그리고 혁신
1) 디지털자산의 기술, 시장, 규제, 3자의 관계
2) 규제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왜 변동하게 되나?
3) 금융시장의 규제는 어떻게 변동하여 왔나
4) 금융 혁신을 향하여
02 기술: 블록체인의 출현
1) 블록체인은 무엇인가?
2) 블록체인의 구조
3) 블록체인의 주요 기술
4) 블록체인 산업의 발전
03 시장: 디지털자산의 진화와 미래
1) 디지털자산의 진화
2) 디지털자산의 유형: 거래 수단에서 실물 연계로
3) 디지털자산 시장의 확산: 매매 거래를 넘어 분산 금융으로
4) 디지털자산의 미래: 금융산업의 패러다임 혁신
04 시장과 규제의 충돌
1) 법적 성격
2) 디지털 자산 악용과 위험성
3) 시장 질서와 이용자 보호
4) 통화·금융시장으로 전이 방지
5) 규제의 딜레마
05 세계 각국의 규제혁신 경쟁
1) 미국
2) 유럽연합(EU)
3) 일본
4) 여타 국가: 싱가포르, 중국
06 우리나라의 대응
1) 가상자산 규제
2) 토큰증권 제도 도입
3) 블록체인 산업 진흥
07 혁신: 디지털 금융 발전과 새로운 경제·금융 질서 선도
1) 디지털자산 시장의 상황과 규제
2) 디지털자산 시장과 규제의 나아갈 방향
<저자 소개>
이효진 李孝鎭
이효진 교수는 1992년 제35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직에 입문하였다. 정보통신부에서 정보화 계획 수립, 통신정책, 정보보호 등을 담당하였으며, 2009년 국무총리실로 옮겨 경제정책 조정, 규제, 기후변화 대응, 가상자산 대책 수립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2021년에는 금융위, 과기정통부, 법무부, 경찰청 등으로 구성된 가상자산 범부처 TF를 총괄하고 ‘가상자산거래 관리방안’을 마련하였다. 2023년 말 경제조정실장으로 공직을 퇴임하였다.
2021년 연세대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디지털자산 규제정책’을 강의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위촉한 블록체인산업협의체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